윗코프, 푸틴과 상트페테르부르크 회담…핵심은 우크라이나 전쟁
21일 미국 특사 스티브 윗코프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콘스탄틴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약 3시간 회담을 가졌다. 양측은 전날 오슬로에서 진행된 우크라이나, 미국, 유럽의 회담 결과를 토대로 휴전 가능성과 삼자 회담 재개 여부를 논의했다. 푸틴은 11월 둘째 주에 한·미·우 삼자 회담 재개에 ‘원칙적’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히고, 억류돼 있던 미국인 스테픈 허버드의 석방을 발표했다.
핵심 요약
- 10월 21일 미국 특사 윗코프가 상트페테르부르크 콘스탄틴궁에서 푸틴과 약 3시간 회담
- 10월 20일 오슬로에서 젤렌스키 대통령, 스퇴레 노르웨이 총리,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이 포함된 우·미·유럽 회담 개최
- 푸틴은 11월 둘째 주 한·미·우 삼자 회담 재개에 ‘원칙적’ 준비 입장을 우샤코프 보좌관을 통해 전달
- 푸틴이 회담 중 4년 이상 억류됐던 미국인 스테픈 허버드(미시간 출신 74세 은퇴 교사) 석방을 발표
- 윗코프가 푸틴에게 우크라이나 휴전을 위한 구체적 접근이 담긴 문서를 전달했다고 발언
- 커셔는 감기 증상으로 러시아에 가지 못하고 원격으로 오슬로 회담에 참여
- 공화당 상원의원 틸리스, 코닌과 하원의원 베이컨은 윗코프가 푸틴을 ‘휴머니스트’라고 부른 것에 강하게 반발, 부통령 밴스는 윗코프를 옹호
왜 중요한가
윗코프와 푸틴의 대면 회담은 2025년 회담이 중단된 이래 우크라이나 관련 한·러 직접 소통 중 가장 중요한 국면으로, 향후 삼자 협상의 형식과 일정을 사실상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푸틴이 ‘원칙적’ 동의와 석방 카드를 동시에 내놓은 가운데 휴전·삼자 회담 재개로 가는 길이 열렸는지가 모든 관련 행보의 초점이다.
무슨 일이 있었나
10월 21일 미국 대통령 특사 스티브 윗코프가 상트페테르부르크 풀코보 공항에 도착해 푸틴 측 특사 키릴 드미트리예프와 함께 콘스탄틴궁으로 이동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약 3시간 회담을 했다. 회담에서 윗코프는 전날 오슬로에서 젤렌스키 대통령, 스퇴레 노르웨이 총리,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 등 우크라이나·유럽 측과 논의한 평화 접근을 담은 문서를 푸틴에게 전달했고 휴전의 ‘기반이 있다’는 견해를 전달했다. 푸틴은 우샤코프 보좌관의 발언을 통해 11월 둘째 주에 한·미·우 삼자 회담 재개에 ‘원칙적으로’ 준비돼 있다는 입장을 미국 측에 알렸으며, 동시에 회담 초입에서 약 4년 이상 억류된 미국인 스테픈 허버드의 석방을 발표했다. 윗코프는 푸틴을 ‘휴머니스트’라고 부르며 석방에 감사했고, 회담 후 X(구 트위터)에서 논의가 ‘건설적’이었다며 한·러·우 전문가급 삼자 협의로 이어지겠다고 게시했다. 10월 20일 오슬로 회담에는 젤렌스키, 스퇴레, 스투브, 윗코프, 커셔(원격), 그리고 EU·프랑스·독일·영국·이탈리아·유럽위원회 등이 참여해 영토, 안보, 전시후 재건을 주제로 ‘실질적 진전’이 있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매체의 시각
우크라이나 측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현재 접전선에서의 동결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 휴전을 ‘최소한의 요구’로 본다는 점, 다음 단계로 제시한 ‘젤렌스키·푸틴·트럼프’ 삼자 정상 회담 형식을 부각한다. 오슬로 회담은 ‘건설적’이었다는 평가와 함께 접전선 동결이 전쟁을 끝낼 ‘현실적 방법’이라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보도된다.
국제 매체의 시각
서방 매체는 윗코프가 푸틴을 ‘휴머니스트’라고 표현한 점과 공화당 동료들의 강한 반발(틸리스, 코닌 상원의원, 베이컨 하원의원), 그리고 부통령 밴스의 윗코프 옹호를 부각한다. 허버드 석방은 미국의 손쉬운 외교적 성과로, 향후 삼자 회담 재개의 길이 열렸는지 여부가 핵심 관심사로 다뤄진다.
보도가 엇갈리는 지점
일부 매체는 윗코프가 푸틴에 앞서 ‘휴머니스트’라고 평가받아서 화답했다는 점을 부각하지만, 다른 매체는 윗코프의 단독 발언으로 기술한다. 석방된 미국인 스테픈 허버드의 나이도 2024년 판결 당시 72세였다는 자료부터 대부분 자료가 인용하는 74세, 일부에서 언급하는 75세까지 출처별로 차이가 있다.
배경
러시아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해 전쟁을 시작했고, 이후 한·러·우 회담은 2025년 2월 제네바에서 마지막 회담을 가진 뒤 중단됐다. 미국은 윗코프와 커셔를 잇따라 특사로 활용해 10월 들어 휴전 모멘텀을 만들려 했고, 10월 20일 오슬로 회담이 그 일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