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드론, 우크라이나 국립과학원 청사 직접타격…최소 2명 사망
2026년 9월 28일 오후 약 13시 30분경, 러시아 제트 드론이 키이우 시내 역사지구 셰브첸키브스키 구의 우크라이나 국립과학원(NASU) 프리지디움 청사를 정면으로 타격해 대규모 화재가 발생했고, 최소 2명이 숨지고 다수가 부상했다. 당시 청사 안에서는 점심시간을 맞아 직원들이 대피했고, 일부 승강장 위에 깔린 2·3층이 부분 파괴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응분의 보복이 있을 것이라고 했고, 시비하 외무장관은 러시아를 UNESCO表决권과 선거권에서 제외해 달라고 촉구했다.
핵심 요약
- 9월 28일 13시 30분경, 러시아제 드론이 키이우 볼로디미르스카 54번지 국립과학원 프리지디움 청사를 정면 강타
- 3층 건물 2·3층이 부분 붕괴, 대규모 화재 발생; 소방관 사다리로 창가에서 2명 구조
- 최소 2명 사망(NASU 측은 호르불린 전 NSDC 비서의 비서 나탈리야 부칼로 확인, 학술원 사망자는 미확인), 다수 부상
- 건물은 독일 대사관·EU 대표부 인근 200m 지점; 러시아주재 국제기구 위치에 대한 우려 확대
- 시비하 외무장관, UNESCO에서 러시아의 表决·선출권 박탈 요구; 폰 데어 라이엔 EU 위원장·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베르세 평의회 사무총장·산두 몰도바 대통령·차크나 에스토니아 외무장관, 독일 외무부 강력 규탄
- 젤렌스키 대통령 "러시아에 대한 보복이 반드시 있을 것"; 하루 동안 키이우 부상자 24명·우크라이나 전역 9명 사망·80명 이상 부상
왜 중요한가
러시아 드론이 주중 점심시간대에 역사적 학술기관 건물과 그 안의 근무자를 직접 노린 것은 민간 표적에 대한 공격이라는 비난을 강화했다. 건물은 독일 대사관과 EU 대표부에서 수백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대사관 인접 지역에 대한 공격이라는 측면에서도 국제적 우려가 커졌다. 시비하 외무장관의 UNESCO 의석 박탈 요구, EU 정상들의 강경 규탄, 그리고 젤렌스키의 '반드시 응징한다'는 발언은 대러 외교·군사적 대응 격상의 빌미를 제공한다.
무슨 일이 있었나
9월 28일 13시 30분경, 러시아제 반응동 드론이 키이우 셰브첸키브스키 구 볼로디미르스카 54번지에 있는 우크라이나 국립과학원 프리지디움 청사 2·3층을 직접 강타해 대규모 화재가 발생했다. 3층 건물 안에서는 점심시간이던 터라 직원들이 대피했고, 일부 사람들이 3층 창가로 대피하려 했으며 소방관들은 사다리로 창가에서 2명을 구조했다. 키이우 시장 크리첸코는 초기 수치로 여성 1명 사망·부상 3명이라고 발표했고,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사상자가 확대돼 최종적으로 최소 2명이 숨지고(부카로 호르불린 전 NSDC 비서의 비서 포함) 다수가 부상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부상자 가운데 3명의 어린이가 포함되었다고 밝혔다. 소방·구조 작업은 25대 장비·100명 규모가 투입되었고, NSAU 측은 공격 당시 근무 중이던 일부 직원과 선임 연구원 1명의 연락이 두절됐다고 알렸다.
하루 동안 키이우 전역에서 러군의 드론·무인기 공격이 이어졌고, 폴딜스키·홀로시우스키·다르니츠키·오볼론스키 등 다른 구에서도 AЗС·약국·통신시설 등이 피격됐다. 이날 시 전체 부상자는 19~24명(어린이 3명 포함)까지 집계됐으며, 우크라이나 전체로는 9명 사망·80명 이상이 부상, 드론 공격은 124기(그중 86기는 제트 드론)에 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폴란드 Dorohusk 국경 수비점에서 약 2km 떨어진 우크라이나 영토에 러시아 제트 드론 1기가 추락했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매체의 시각
우크라이나 매체는 13시 30분경의 정오 공격, DSNS의 화제 진압 과정, 2·3층 부분 붕괴와 같은 현장 정보를 가장 먼저 알렸다. 젤렌스키·시비하·부텐코 등 우크라이나 정부 관계자들의 발언이 1차 인용됐고, 학살 역사(NASU 건물은 1918년 흐루셰프스키 부대와 볼로디미르 베르나드스키가 처음 집을 든 장소)와 1918년 1월 무라비요프 휘하 볼셰비키 포격이라는 비교 인용이 두드러졌다. '과학이 러시아의 표적이 됐다'는 라이엔 발언과 UNESCO 의석 박탈 요구는 국제적 고립 심화 전략의 일환으로 부각됐으며, 여러 매체는 폴란드 국경 근처 드론 추락, EU 대표부 200m 거리 등 국제적 의미를 강조했다.
국제 매체의 시각
해외 매체는 학술기관과 역사적 건물이라는 프레이밍을 우선했다. BBC·스피겔·아제르바이잔 APA 등은 주한 미주 대사관과의 거리(독일 외무성 보도자료), EU 대표부 인접성, 학술원 사망자 같은 인물적 디테일을 두드러지게 보도했다. EU 정상·평의회 사무총장·에스토니아·몰도바·프랑스 정상의 규탄 성명은 '학살은 용납할 수 없다'는 메시지로 일관되게 수렴했고, 폴란드 국방장관의 Dorohusk 국경 인근 피격 발언은 우크라이나 밖으로의 확전 우려를 자극했다.
보도가 엇갈리는 지점
첫째, 사망·부상자 수치가 시간에 따라달라졌다. 초기에는 시장실·KMDA 기준 1명 사망·3명 부상이었으나, 이후 4~5명 부상으로 늘었고, 젤렌스키는 1명 사망·6명 부상(어린이 3명 포함),DSNS는 1명 사망·7명 부상으로 보고했다. 우크라이나 언어권리위원과 자호로드니 NASU 원장은 두 명의 학술원 과학자가 죽었다고 말했고, NASU 홍보실은 호르불린 전 비서의 비서 1명 사망만 확인해 학술원 사상자 수에 대해서는 불일치가 남는다.
둘째, 키이우 전체 사상자는 크리첸코의 발표 시점에 따라 14명→19명→24명(어린이 포함)까지 확대됐다. 드론 규모에 대해서도 공군이 124기(86기 제트), 젤렌스키는 '약 120기 중 90기 제트'로 수치를 달리 제시했다.
셋째, 같은 날 따로 피격된 드브로부트 클리닉에서는 부상자 규모를 매체에 따라 7명 또는 8명(그중 6명은 클리닉 직원)으로 보도했다.
배경
우크라이나 국립과학원(NASU)은 1918년 11월 27일 헤트만 스코로파드스키에 의해 키이우에서 설립됐고, 초대 원장은 볼로디미르 베르나드스키였다. 현재 프리지디움 청사가 자리 잡은 볼로디미르스카 54번지 건물은 1850년대 레바쇼바 후작 부인 관저(Pension of Countess Levashova)로 세워졌으며, 1918~1919년부터 학술원이 사용하며 17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다. 이 건물은 1918년 1월 무라비요프 휘하 러시아 볼셰비키 군대에 의해 이미 한 차례 포격을 당한 적이 있다. 시·국가 차원에서 학술원 사망자는 1980년대 기준 약 24,000명(연구자 13,000명 이상)이 근무하는 우크라이나 최대 학술연구 네트워크다. 이번 공격은 주중 지속된 키이우의 무인기 공세(이틀새 124기의 무인기) 가운데 이뤄진 것으로, 학술원 청사가 독일 대사관·EU 대표부 인근이라는 상징성을 더했다.